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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18] (경향신문) 미투 6개월, “기사화 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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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8-09-27 11:14 조회1,1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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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에스더씨(세례명·36)가 또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주치의는 “우울증이 심해진 것 같다. 입원을 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벌써 세 번째 입원이다. 그는 “많이 안 좋았는데 그래도 입원하고 나서는 좀 나아졌어요. 식사도 규칙적이고 잠도 규칙적으로 관리해주니까요”라며 희미하게 웃었다.

우울증이 다시 심해진 건 올해 초로, 미투(나도 고발한다·MeToo)운동이 한창일 때였다. 에스더씨는 미투운동을 보며 “이제 내 사건도 해결되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오히려 근로복지공단에 에스더씨의 산업재해 인정을 다시 검토해달라는 취지의 심사를 청구했다. 산재를 취소해달라는 것이었다. 

에스더씨는 성희롱과 2차 가해로 인한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산재로 인정받은 몇 안 되는 ‘성공사례’ 중 하나다. 성희롱·성추행·성폭행 등 대부분의 성폭력은 입증하기가 어렵다. 직장 내 성폭력이 있었다 해도 산재로 인정받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에스더씨는 이를 모두 해냈다.
 

회사 “산재 인정 취소해달라” 

사건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1월 8일 점심께 부장이 에스더씨에게 손난로 사용법을 물었다. 에스더씨가 사용법을 알려주자 부장은 “손에 들고 다니지 말고 꼭 가슴에 품고 다녀라. 그러면 더 따뜻하겠다”고 말했다. 에스더씨는 부장이 자신의 가슴을 쳐다봤다고 기억한다.

같은 해 4월 회사 야유회 후 점심 회식 자리에서도 에스더씨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에스더씨는 통로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부장은 에스더씨를 방 안쪽 원장의 옆자리로 옮겨 앉게 했다. 에스더씨는 원장 옆에 앉아 고기를 굽고 술을 따랐다. 

이후 에스더씨는 부장과의 면담자리에서 “제가 술집여자입니까? 왜 제가 그 옆자리에 가서 앉아 있어야 합니까”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자기가 그렇게 행실하면 술집여자지”였다. 면담 직후부터 이유없이 미열이 나고 배가 아파왔다. 에스더씨는 오후 9시께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회사 내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스더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인권위는 9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성희롱을 인정했다. 그는 인권위 결정을 기반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고 ‘우울병 에피소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산재를 인정받았다. 회사는 바로 이 판단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사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에스더씨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회사는 감사원에 근로복지공단이 해당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며 감사를 청구했다. 에스더씨는 미투 국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에스더씨는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고 자신이 당한 성폭력이 다른 사례만큼 자극적이지 않아서 자신의 피해가 지속되고 있다는 생각까지 한다. 그는 “다른 피해자들처럼 신상을 공개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까요?”라며 “지금은 환자복을 입고서라도 방송에 나가고 싶을 정도예요”라고 말했다. 
 

단역배우 자매 자살사건, 감감 무소식 

6개월 전 서지현 검사가 JTBC에서 자신의 성폭력 사건을 고발했다. 이후 각 분야에서 일어난 미투운동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 인식에 경종을 울렸다. 일각에서는 “미투 때문에 말을 못하겠다”며 ‘펜스룰’을 이야기했지만, 이 역시 “평소에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는 뜻”이라는 반박에 힘을 잃었다.

하지만 에스더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에스더씨는 “내 사건이 유명하지 않아서”라고 하지만 대중의 공분을 일으킨 사건도 다를 바가 없다. 피해자들은 “서지현 검사건도 해결이 안 됐는데 우리 같은 사건이 해결이 쉽겠나”라고 입을 모은다.

청와대 청원 20만명을 돌파한 이른바 ‘단역배우 자매 자살사건’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29일, 경찰청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진상조사팀을 꾸리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소식을 들은 어머니 장연록씨(66)는 두 딸의 이름을 부르며 “내가 살아있는 게 맞나 싶다”면서 “이거 꿈 아니지”라며 눈물을 흘렸다.

얼마 뒤 장씨는 경찰청 조사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조사팀은 1000쪽에 이르는 자료 확보는 물론이고 관련자 20명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슈가 되자 여성가족부도 장씨를 찾았다. 여성가족부에서는 자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영결식을 열어주겠다고 했다. 장씨의 마음이 부풀었다. 

장씨는 가해자 12명에 대한 재심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찰청에서 조사팀을 꾸린 만큼 2차 가해 의혹이 일었던 경찰들에 대한 징계, 그리고 이들로부터 사과는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건은 장씨의 바람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단역배우 자살사건 진상조사 중간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팀은 3월 28일부터 5월 17일까지 총 7건(819쪽)의 자료를 확보하고 관련자 20명 중 15명에 대한 조사를 완료했다. 하지만 강제성 없는 조사팀의 한계는 명확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12명 중 3명이 조사를 거부했고 1명은 소재가 확인되지 않았다. 

수사관들에 대한 조사도 마찬가지다. 큰딸 소희씨(가명)에게 “가해자 성기를 그려 오라”고 했던 이모 경찰관은 퇴직 후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로 조사하지 못했다. 소희씨가 작성한 메모뭉치로 책상을 치며 “이게 사건이 되냐”고 했던 조모 경찰관은 두 차례 조사를 받았지만 별다른 징계는 받지 않았다. 사과도 없었다. 

오히려 미투운동이 잦아드는 기미가 보이자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반격에 나섰다. 12명 중 3명이 장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각각 5000만원씩 총 1억5000만원이다. 경찰 조사팀은 중간결과 보고서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조사팀이 꾸려진 지 다섯 달째지만, 아직 최종보고서는 나오지 않았다. 

장씨는 “경찰은 중간보고서 발표 이후에 전화 한 통 없다”며 “순전히 보여주기 식이고 제 식구 감싸기다”라고 말했다. 장씨는 한동안 중단했던 1인시위를 다시 시작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과 2차 가해 의혹이 일었던 경찰관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장씨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무죄’ 선고도 미투 이후 6개월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지난 14일 안 전 지사가 받아온 ▲위력에 의한 간음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 세 가지 혐의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위력을 행사해 간음 및 추행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판결 직후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성폭력을 인지하고 사회에 알리기까지 수백 번 고민하기를 반복할 피해자들에게 이 판결은 침묵에 대한 강요가 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김지은씨는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씀하실 때, 결과는 이미 예견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 안 전 지사 판결 이후 피해자들은 위축된 모습이다. 미투 국면에서 실명으로 자신의 피해사례를 고발했던 ㄱ씨는 “안희정 전 지사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불안했다. 다른 피해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꽃뱀 서사’가 판을 쳤다. 그리고 그 불안이 현실이 됐다”며 자신의 사례를 기사화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주간경향>이 6개월 전 만났던 ㄴ씨 역시 기사화를 거부했다. ㄴ씨는 고발 이후 가해자로부터 역고소를 당한 상황이다. ㄴ씨는 “안희정 판결을 보면 김지은씨가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을 보였다고 하는데 대체 피해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말도 안 되는 판결이라고 생각하지만 위축되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로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안희정 사건에 대해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게 오히려 걱정이었다”며 “남성 중심의 정치권력, 사법권력, 행정권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공고하다. 이번 판결은 그걸 확인시켜 준 셈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미투운동이 원점으로 돌아간 건 아니다. 이 대표는 “낙관적인 전망보다는 실질적인 싸움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피해자들도 비슷한 마음이다. 기사화를 거부한ㄱ씨는 “지금은 어렵지만 사건이 정리되면 좋은 선례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장씨 역시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지만 어차피 평생 싸우려고 했다”며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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