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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11] (경향) [혐오사회] 5회 페미니스트 정치, 각축하고 손잡고 버티고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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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6-05-11 17:16 조회2,0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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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5회 페미니스트 정치, 각축하고 손잡고 버티고 살아남기

/ 김은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에서 연구위원으로도 함께 해주고 계신 김은희 선생님의 글이 경향에 실렸다는 소식을 듣고! 공유드립니다.

경향신문 뉴스큐레이션사이트 ‘향이네’는 한국 사회 안팎의 혐오 문제를 진단하고 성찰하는 기획을 마련해 전문가·활동가 기고로 성소수자·여성에 대한 혐오 문제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또한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대안도 제시합니다. //

 

페미니스트 정치, 각축하고 손잡고 버티고 살아남기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
 

보통선거권은 근대 이후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을 키우는 열쇠말이었다. 근대 시민혁명이 상정했던 ‘부르주아 남성 시민’이라는 벽을 넘어서기 위한 여성참정권투쟁은 이제 역사가 되었다. 지난 3월 국내에 번역·출판된 영국 여성참정권운동가 애멀린 팽크허스트의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는 “우리들의 전투는 사실상 끝났다고 확신한다”로 끝맺고 있다.
 

그러나 때 이른 확신이었을까. 얼마 전 시사주간지 <미래한국> 편집위원인 한정석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개인적으로 난 여성들의 정치참여에 부정적이다. 투표권을 주는 것도 그렇다. (중략) 정치참여는 공공성의 문제이기에 사회와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옳든, 그르든 논리적 의견이 있어야 한다. 여성들은 그런 문제 보다는 가족과 자신에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여성들 스스로 참정권을 좀 제약하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2015년이니까’ 남녀동수 내각을 구성한다는데, 성별에 따른 공사이분법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여성의 정치적 시민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낸다. ‘2016년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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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선거라는 공간을 통해 정치를 압축적으로 경험한다. 반면 ‘선거는 민주적인가?’라는 오래된 질문도 여전하다. 선거란 애초부터 민주적인 도구로 고안된 것이 아니고, 시민들을 관객으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의 속살은 알고 보면 게임의 룰이 지배하는 처절한 경쟁의 공간이기도 하다. 게다가 선거의 의미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야 하는 국가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대총선을 홍보하면서 여성유권자들에게 ‘화장품 고르듯’ 하라거나, 투표를 하면 아이돌스타 설현이 ‘심쿵심쿵’한다고 하는 걸 보면 ‘민주주의의 꽃’을 다른 의미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거 국면, ‘젠더는 삭제된’ 민주주의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발생한 사안들 중에는 젠더관점에서 되짚어 보아야 할 갈등의 지점들이 적지 않다. 전반적인 정치 보수화 경향 속에서 사라진 성평등 정책공약과 불거진 여성혐오, 기득권 정당과 후보들의 선거운동전략에서 부재했던 젠더관점, ‘여성이 여성을 대표하는가’ 또는 ‘어떤 여성인가’에 대해 충분히 논쟁되고 있지 못한 현실, 그리고 공직선거법이 규정한 선거운동방식 마저도 여성후보에게 불리하게 작동되기도 한다. 게다가 ‘안보’가 강조되면서 여성정치인들의 홍보물은 군복으로 도배가 되기도 했고, 맥락 없이 ‘모성’을 내세우는 방식도 선거철마다 들려오는 익숙한 레토릭이다.
 

선거 결과가 보여준 20대 총선 당선인의 모습은 ‘재력있고 고학력인 50대이상 중년기혼남성’이었다. 선거에서 공천된 사람 또는 당선된 사람들이 특정한 조건으로 정형화 된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 반한다. 이런 전형과 비교되는 ‘젊은 여성 후보’는 어떤 경우 기득권정치에서 전략적으로 발탁되어 지지받기도 하지만(예를 들어 19대 총선 당시 문재인 후보과 경쟁한 손수조 후보처럼), 많은 경우 구체적인 선거현장에서는 제도적·현실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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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의 경우 10명의 총선후보 중 5명이 여성이었는데, 평균연령 33세로 비혼 여성후보들이 다수였고 사무책임자 등 선거캠프 구성원들도 다르지 않았다. 비례대표 3번 김주온 후보(25)는 녹색당이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되고, 젊은 여성들이 조직화 된 정치를 경험하기에 좋은 플랫폼”이라고 평가했지만, 이런 여성후보들에게 문턱이 없는 정당은 대부분 재정적 기반이 취약하고 당선가능성이 극히 낮은 소수정당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비례대표 1번 황윤 후보(44)는 시골동네에 살면서 선거운동을 위해 전국을 누비는 와중에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자녀의 돌봄까지 병행하느라 몸과 마음의 고단함이 더했다. 당 차원에서의 배려가 없지 않았지만 ‘엄마의 몫’을 온전히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경기 과천의왕 지역구에 출마한 홍지숙 후보(33)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젊다는 이유로, 수모를 겪은 순간이 많았습니다. 내가 남성이라면, 내 옆에 나이든 남성이 있었대도 이들이 그랬을까? 그 생각을 하면 견디기가 힘들었어요.”라고 고백한다. 유권자들 그리고 경쟁후보 선거캠프 관련자들의 ‘어린 여자가 어딜?!’ 하는 태도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 언어적·신체적 성희롱을 경험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서울 동작갑 지역구에 출마한 이유진 후보(40)는 공직선거법의 비혼 차별을 경험해야 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선거운동용 명함은 가장 큰 홍보수단 중 하나이고, 특히 예비후보 선거운동기간에는 거의 유일한 선거운동방식이다. 그런데 현행 공직선거법은 후보자 외에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에게만 따로 명함을 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비혼인 이유진후보는 지역구의 다른 후보들과 달리 ‘나 홀로’ 명함배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해당 조항은 2011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여부를 다투기도 했고, 2012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신청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대로다. 그 밖에도 1500만원에 달하는 고액 기탁금 역시 상대적으로 재정적 기반이 취약한 여성이나 청년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이런 점들은 개별 정당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극복되기 어려운 조건들이지만, 다양성의 정치가 보장되는 여성들의 평등한 정치참여를 위해서는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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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정치, 민주주의를 향한 급진적 상상력
 

여성혐오로 논란이 되었던 사안 중에는 정의당 ‘중식이밴드 사태’를 빼놓을 수 없다. 정의당 여성위원회 차원에서 문제제기를 담은 입장문이 제출되었고, 노동당 여성위원회와 녹색당 여성특별위원회에서도 연대성명을 발표했다. 일부에서는 이 연대성명을 두고 선거시기 경쟁정당에 대한 공격 내지는 비난이 아니냐는 언급도 있었지만, 사전 소통과정이 없지 않았고 “정의당 여성위원회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며” “한국 사회 내 진보정당들의 여성주의 감수성 회복에 초당적 연대를 이어갈 것을 약속”하는 내용이었다.
 

유독 이 사안이 쟁점이 된 이유는 바로 정의당이 대표적 진보정당임을 자임해왔고, 정의당 내에 계속해서 페미니스트 정치를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서상으로는 새누리당도 강령 기본정책에 ‘성평등 사회의 구현’이 담겨있고, 더불어민주당 강령 정강정책에도 ‘성평등이 실현되는 대한민국’이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문제적 사안이 발생했을 때 내부의 비판적 목소리가 과연 얼마나 조직적으로 제기되는가? 과거 민주노동당 창당준비과정에서 여성할당제가 쟁점이 되었을 때 권영길 대표는 “이것이 사실상 진보정당의 성격을 규정짓는 갈림길”이라고 말했었다. 그만큼 성평등과 젠더민주주의는 진보정치가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정치의 중요한 리트머스인 것이다.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겠지만,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 전 5월경에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주최로 ‘제1회 여성노동자 정치인 활동보고대회’가 열렸다. 민주노총이 배출한 여성정치인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여성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을 모색하고 진보진영 여성주의를 재평가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시 심상정의원은 “여전히 진보진영 내에서는 남성이나 여성 모두 여성주의를 내세우는 걸 불편해 한다. 그리고 우리 정치권의 역사를 돌아봐도 여성주의를 내세워 출세한 정치인은 아직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저는 여성주의를 오히려 더 세게 내걸고 진보진영의 여성주의를 개척해 발전시켜 나가는 데 주어진 소임을 다하겠다”고 발언했었다. 제도정치에 뛰어든 운동세력은 자신의 가치와 대중 유권자의 지지 사이에서 ‘선거참여의 딜레마’를 겪게 된다(A. Przeworski, 1985). 이번 ‘중식이밴드 사태’와 일련의 과정이 선거시기 어쩔 수 없는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심상정 대표가 2007년에 했던 저 발언, 그 ‘소임’을 잊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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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주최로 열린 ‘제1회 여성노동자 정치인 활동보고대회.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나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처럼 한국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좌파정치인으로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가 있다. 그는 스스로를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라고 밝히고 있고, (쟁점이 많아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당 대표 선거를 치르면서 성평등공약(Working With Women)을 내놓았으며 당선 이후 그림자내각도 남녀동수로 구성했다. 페미니스트 정치는 진보정치에 급진적 상상력을 불어넣는 것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지키는 것 그 자체이기도 하다.

 

진보·대안정당 내 여성운동의 갈 길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통합진보당 해산을 거쳐 온 이번 총선 결과는 축소된 진보정당의 입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거기에 더해 온라인게시판에서 쏟아지는 반여성적 발언, 연이은 성폭력사건까지 진보정당 내 여성주의운동도 갑갑한 상황에 몰려 있다. 여러 갈래의 페미니즘‘들’이 균열을 내면서 당내에서 토론되기보다 어떤 금칙어를 만들어내면서 오히려 공동체를 옭아매는 존재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다른 결에서 절반이 넘는 여성당원비율과 ‘여남동수제’ 그리고 평등문화 지향 등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녹색당의 입장도 마냥 낙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국 진보정당들은 기득권정당과는 다른 내부 민주주의를 강조해왔지만, 실제로는 성평등을 체화된 조직문화로 녹여내고 있지는 못하다. 여성정치할당제만 해도 다른나라의 경우 진보정당 내부에서 기득권정치로 퍼져나가는 ‘전이효과’가 확인되지만, 그 방식이 ‘확산’이든 ‘경쟁’이든 한국에서는 할당제 전이효과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어느 남성 정치학자는 과거 민주노동당이 당내 민주주의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한계가 있었고 이런 한계들이 전체 정당체제의 발전을 가로막았다고 분석했다. 민주적이어야 할 것은 하나의 정당이 아니라 정당체제며, 정당체제를 민주화하기 위해서는 개별 정당의 민주주의를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박상훈 2008, “한국은 진보정당 있는 민주주의로 갈 수 있을까?”).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정당 내부의 민주화는 정당체제 민주화와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관계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당내 민주주의를 위한 젠더관점 비판과 페미니스트 의제는 강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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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영국 노동당 대표 선거 당시 제레미 코빈의 여성공약집(왼쪽)과 당선 후 남녀동수로 구성된 그림자 내각.

정당 내 성평등 문화를 만드는 과제는 여전히 모두의 몫이기 보다 여성위원회나 일부 여성주의자의 역할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많은 이들의 노고가 지속되어 왔음에도 지금까지 진보정당 내에 이어져 온 여성주의운동의 역사와 경험이 조직적으로 축적되고 공유되지 못하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매번 다시 시작하듯 닥친 문제와 싸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소진되어 지쳐 나가떨어지는 여성주의 활동가들이 생겨났다. 그 갈등의 과정에서 떠나는 이들도 남는 이들도, 그리고 싸우지 못한 이들도 모두 내상을 입는다.
 

정치적으로 조직화 된 공간으로서 진보·대안정당 내 여성주의운동의 유의미함은 여전하다. 어디 정당활동 뿐이겠나. 조직 안에서 활동하는 여성주의자들이 서로 경험을 공유하고 연결되어, 세대가 공존하면서 오래 버티고 끝까지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당연히 오래 버티자면 바늘 끝 같은 뾰족함은 유보해야 하는 때도 있을 터, 그 시기에 그저 닥치고 참으면서 상처받거나 혹은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고 내부에서 계속 싸워봤으면 좋겠다. 그래야 바뀌지 않겠나.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라는 영화가 상영됐었다. 2005년 스웨덴에서 창당한 페미니스트정당 ‘F!’(Feministiskt Initiativ)의 10년 여정을 기록으로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하다는 스웨덴에서조차 가부장제에 도전하고 여성 아젠다가 진보하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화의 감동스러운 마지막 장면은 10년 세월을 거쳐 당선자를 낸 축하의 자리였다. 승리 그 자체보다, 그 자리에 지난 우여곡절과 풍파를 함께 겪어온 이들이 여전히 버티고 서로의 곁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가슴 먹먹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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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6회는 이진옥 대표님의 글이 실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두근두근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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